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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차 회동이 평양에서 9월18~20일 열렸다. 문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재계 인사들을 포함, 200여 명의 방문단을 이끌고 평양에 도착했다. 10만 평양 시민들은 붉은 꽃을 흔들며 문 대통령을 환영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돌아오는 길에 김정은 부부와 함께 백두산 정상에 올라 산책하는 등 친교를 과시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서울의 한 시민은 “5천년 헤어져 살던 민족에게 희망이 생겼다”고 감격하는가 하면, 어떤 시민은 “정치적 쇼”라고 일축해버렸다.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19일 발표한 ‘평양 공동선언’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비핵화의 구체적 진전을 바라던 우리 국민을 실망시켰다. 9월 평양 공동선언이 5개월 전의 판문점 선언처럼 북한 비핵화에 대해선 간단히 언급했고 대북 경제 지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평양 공동선언은 북한이 동창리 엔진시험장·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영구 폐기하고,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도 영구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동창리 발사대는 북한이 이미 이동식 발사대를 사용한다는 데서 폐기한다 해도 얼마든지 이동발사대를 이용해 미사일을 쏠 수 있다. 또한 영변 핵시설도 핵폭탄을 영변이 아닌 다른 지하시설에서 농축우라늄으로 제조하는 터이므로 영변 시설을 폐기해도 핵무기를 계속 생산할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핵물질을 계속 생산한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김정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조선반도에서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 대목도 김이 5월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내용을 반복한 데 불과하다. 이처럼 북핵 폐기에 대해선 간단히 넘어갔으면서도 남한의 대북 경제 지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시간까지 명시해 주었다. 평양 공동선언은 남북이 ‘금년 내 동·서해안선 철도 및 도로 연결을 위한 착공식을 갖기로 했다.‘고 명시했다.뿐만 아니라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고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유엔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풀리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의 성급한 대북 경제 지원 의도를 표출한 게 틀림없다. 문 대통령이 대북 제재 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풍성한 경제 지원을 약속한 데는 나름대로 계산된 게 있다고 본다. 북한이 남한의 경제 지원을 얻으려면 빨리 비핵화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전제 조건을 달았다 해도 북한이 구체적으로 핵 폐기에 나서지 않은 마당에서 대북 경제 지원을 약속한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에게 대북 경제 지원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한다. 문 대통령이 앞장서서 대북 제재를 해체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게 한다.문 대통령은 방북하기 닷새 전에 북핵과 관련, “북한이 미래 핵뿐 아니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재 핵도 폐기하겠다는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평양에 머무는 동안 북한의 미래와 현재 핵 폐기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김정은 부부와 백두산 정상에 함께 등정해 다정하게 산책하는 등 두 사람의 친교를 다지는 데 열중했다. 김정은에겐 수십 내지 수백조 원의 경제 지원도 다짐했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은 북핵 폐기와 관련,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크게 떠벌리기만 하고 실제의 결과는 작은 것)로 그쳤다. 문 대통령은 평양 방문 기간 비핵화 진전 없이 문·김 두 사람의 친교잔치로 취(醉)했다. 그의 방북에 건 비핵화 기대는 그가 등정했던 백두산 천지 안개처럼 날아가 버렸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피니언/피플 | 정용석 교수 | 2018-09-28 20:38

그는 원래 준비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변호사일 뿐이었다. 정치적 경험으로는 2년간의 연방 하원의원이 전부였다. 당시 정적이었던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노예제 논쟁으로 전국적인 인물로 부각되기는 했으나 연방 상원선거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고 부통령 선거도 실패했다. 영광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겪은 정치 역정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담대하고 냉혹한 권력 의지가 있었다. 야망의 샘이 끊임없이 솟았고 때로는 속물적인 정치 행태도 보였다. 수차례의 실패를 통해 용기와 결단력을 키웠다. 마침내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됐다. 쪼개진 연방을 재통합했고 노예제의 야만적 난제를 해결하는 등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꿨다. 에이브러햄 링컨 이야기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권력 의지도 링컨 못지않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학교 때부터 책상 옆 벽면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라고 적어 놓고 권력의지를 불태웠다. 독자적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에 한계를 절감한 뒤에는 ‘3당 합당’이라는 정치 공학적 사술(邪術)을 쓴 끝에 대통령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권력 의지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청년 시절부터 정치에 뜻을 품고 선거에 나섰으나 총선에서 세 번이나 연속으로 실패했다. 와신상담 끝에 1961년 5월 가까스로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 첫 당선됐으나 5.16 군사정변으로 의원선서도 하지 못했다. 그 후 꾸준히 박정희 전 대통령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거물이 됐고, 정치적 야합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DJP 연합’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링컨을 비롯해 YS, DJ 등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남을 정복하고 동화하여 스스로 강해지려는 권력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고건 전 총리는 2007년 여당의 강력한 대선 후보로 떠올랐으나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약해 선거에 나서보지도 못한 채 낙마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불출마를 선언해버린 것이다.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역시 2017년 조기 대선의 강력한 야당 대선 후보로 각광을 받았으나 자신에 대한 무차별적 검증 과정과 지지율 하락 등으로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권력에 대한 의지 결핍에 의한 낙마였다.  입신양명 후 ‘꽃길’만 걸어온 두 사람 모두 ‘권력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권력의 속성을 깨닫지 못한 채 권력이 자신의 손에 쥐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근래 황교안 전 총리가 다시 ‘보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에서 1위를 기록했으니 세간의 관심이 무심할 리 없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질 않고 있다. 지난 해 조기 대선과 올 지방선거 때도 그랬듯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계속 말을 아껴 그는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쟁취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고 전 총리나 반 전 총장처럼 권력이 자기 손에 쥐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는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멍석을 깔아줬는데도 계산기만 두드리다 멍석을 접었고, 올 지방선거에서도 “역할을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선대위원장은 물론이고 서울 시장 후보로도 나서지 않았다. 또 ‘간’만 보다 들어갔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이런 그의 행태로 볼 때 그는 앞으로도 정치적 역할론이 제기될 때마다 저울추만 들여다보다 포기할 공산이 높다. 황 전 총리가 정녕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링컨과 YS, DJ처럼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용기와 결단력을 키워야 한다. 용기가 없으면 제아무리 준비가 됐다 해도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이고 결단력이 없으면 경험이란 단순한 연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피니언/피플 | 고재구 회장 | 2018-09-28 20:35